2018년 8월 현재 상황. 언제나처럼 꾸역꾸역 계속 사고는 있는데 몇 장 됐는지 알지도 못하겠고. 대략 7-8천 사이로 예상 중. discogs에 등록 안한지도 한참 됐고, 비닐 포장은 당연히 뜯지 않지요. 소원이라면 넓은 집으로 가서 이거 제발 한 번 정리해 보는 거. 장르별로도 좋고, 알파벳 순으로도 좋고, 존 쿠삭의 chronological 같은 건 될리가 없고. 음악은 일본 계정 spotify로 듣고 있다. airplay되는 uniti star라는 앰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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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대면기 [보유 판 수: 0~20장]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지 비닐판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첫 구매를 하게 되는 시기. 어렸을 때부터 쭉 씨디는 모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크게 재미나지 않은고로 종목 전환을 해 보고 싶어서, 친구가 보여준 큰 사이즈 앨범 커버가 이뻐서, 돌아가는 판과 바운스 하는 바늘, 지직지직 화이트 노이즈가 주는 공감각적 매력에 빠져서, 괜히 주변 여자들에게 힙하게 보이려고("오빠 이게 엘피야? 우왕~", "응 같이 바늘 한번 올려볼까?") 등 여러 이유로 입문하게 된다. 180그람, 오디오파일, 게이트폴드, 7인치 등 여러 용어에 혼란을 느끼며 아직은 비싼 판 값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짐. 교보문고, 퍼플레코드 등 접근성 좋은 오프라인 매장이나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서 정말 좋아하는 음반 한 두 장 가져와 보고(보통 스테디셀러라 우리나라에도 재고가 넘쳐나는 라디오헤드, 뮤즈 쪽) 같은 시기에 입문용 턴테이블도 주문하게 됨. 내 앰프엔 포노 단자가 있던가 하고 먼지 쌓인 오디오 장식장을 한 번 뒤집어 보기도 함.
2. 입문기 [보유 판 수: 21~150장]
비닐판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구매가 잦아지는 시기. 훼이버릿 밴드의 주요 앨범은 아무래도 갖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온라인 매장에 가서 LP를 검색어로 한 후 재고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기도 하고 메타복스 등의 비닐판을 주로 다루는 오프 매장에 찾아가 1시간 이상 죽치고 있어 보기도 함. 물론 진짜 원하는 음반을 찾기 힘든 경우도 많지만 그것보다는 아직 못 산 것들이 많다보니 크게 신경 쓰이진 않음. 두 세 장씩 쌓이는 스피커 옆 콜랙션을 보면서 괜히 뿌듯한 느낌에(사이즈가 크니 왠지 박스셋 하나 들여 놓은 느낌) 자꾸 사진 찍어 SNS에 등록시키고, 판 위에 바늘 올려 놓고 카트리지가 골 따라 흐르는 것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런 시기. 순수하게 판을 좋아하다보니 이게 유럽반인지 미국반인지, 재판인지 초판인지, 비싼지 싼지는 크게 따지지 않고 어쩌다 컬러 판때기라도 가지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이 좋아짐. 한 장 한 장 소중한 음반들에겐 보호 비닐로 꼭꼭 예쁘게 옷 입혀주며(판을 꺼내다가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음) 독서실에 엎드려서 워크맨으로 테이프 늘어져라 돌려 듣던 그 시절 그 느낌으로 음악 감상에도 불이 붙기 시작.
3. 발전기 [보유 판 수: 151장~500장]
3개월 할부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재고 중 웬만한 건 미리 다 땡겨놨기 때문에 외국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시기. 해외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호텔 근처의 레코드 샵이 있나 구글링 해 보게 되고.. 미국 아마존이나 insound, soundstagedirect 등지에서 주문 넣어보려다 비싼 해외 우송료에 좌절하기도 하고.. 컬랙션의 빠진 이빨 채우려다 보니 외국에서도 출시 시기가 좀 지난 것들은 은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닿고 왜 진작 판을 모으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이 시기엔 씨디로 이미 갖고 있는 음반도 당연하다는 듯이 비닐로 중복 구매하게 되며, 보통 밴드나 레이블에서 프리오더를 통해 한정반들을 풀고 그때를 놓치면 ebay에 다시 올라오는 값이 훌쩍 뛴다는 사실도 눈치채고 되팔이에 대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게 됨. 이쯤되면 보관하는 것도 문제요 판 구매 비용이 차지하는 비용도 무시 못할 정도가 됨. 당연히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나(그러니 어떻게든 돈 아껴보려고 국내외 사이트 비교는 물론 배송 대행 이용, 프리 쉬핑용 promo code 검색, 세일 기간에 몰아 사기 등 갖은 방법 동원) 쌓여가는 판을 보면 그런 걱정은 단번에 저 멀리로. 택배가 오는 날에는 여전히 언제나 두근두근. 페북 친구들은 "와 너 진짜 음악 좋아하는구나~", "엘피 한 번 구경 가야겠네 ㅎㅎ"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신기해 함. 아직은.
4. 자립기 [보유 판 수: 501장~2000장]
내가 못 가질 판은 없다! 해외 구매 정도야 능수 능란하게 진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지만 주위에선 슬 미친놈 소리 듣게되는 시기. 미주, 유럽을 망라하여 신작은 해외 대형 온라인 샵이나 레이블에서의 직구매(스티커나 샘플 챙겨줘서 좋아라 함), 중고는 ebay나 discogs에서 개인 셀러와의 거래 등으로 레코드 스토어 데이 한정반 쯤이야 마음대로 들여오는 능력이 갖춰짐. (몰** 우수 플래티넘 회원 등극은 덤) 경매가 주는 뽕 맛에 빠져 ebay mobile의 알림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며 새벽에 알람 맞춰 놓고 비딩하는 일도 다반사. 7인치 싱글, 10인치 ep 등의 빠진 이빨도 제법 체워지기 시작하며 내가 가진 판이 몇 번째 프레싱인지 어떤 컬러가 더 예쁜지(splatter, swirl, split의 차이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기본) 프레싱 사양 차이도 꼼꼼히 따져 보게 되고, variant collector(여러 사양으로 찍혀 나오는 판들을 모조리 수집)라 불리는 정신나간 친구들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나도 잘못하다 저 꼴 나는 게 아닌가 은근 걱정하게 됨. 디스크 유니온 원정 정도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고 외국에서 정신 못차리고 이것저것 들고오다 수화물 무게 한도를 넘어서 오바 차지의 위기도 종종 맞이함. 줄기차게 이어지는 프리오더로 택배는 하루 걸러 하나씩 도착하게 되며(이와 함께 주문 잘못 넣어서 관세도 몇 차례 납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방 이곳저곳에 쌓여지는 판들을 보며 '아 이래서 엘피가 망했구나' 늦은 깨우침도 얻게 됨. 장 수가 자꾸 늘어나니 보호 비닐 구매 비용 조차 부담스러워져서 최대한 원래의 비닐 포장을 유지한 채 옆구리 뜯기 신공 등을 이용하는 생활의 지헤도 터득하게 되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판 사진들에 붙는 <좋아요>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만 모르고 있음.
5. 중독기 [보유 판 수: 2001장~5000장]
내가 판을 사는지 판이 나를 사는지.. 주위 사람들도 설득을 포기하기 시작하는 시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마냥 방의 3면은 이미 비닐판으로 가득차 있으며 30~40년 묶은 중고판 들에서 풍겨오는 헌책방 냄새가 방향제인양 안 공기를 지배. 사는 속도가 듣는 속도를 추월한지는 오래 전 일이고 비닐 포장 조차 안뜯은 판들이 이미 절반 이상. 이제는 초판, 재판도 그리 신경쓰이지 않게 됨. 노래만 나오면 그만.. 커버가 구겨졌다? 판에 기스가 좀 있네? who cares? 그렇게 좋아라하던 컬러판이 더 이상은 소중하지 않으며(기스 난 것도 잘 안보이잖나. 특히 흰 판) 역시 레코드판은 진중한 180그람 블랙이 최고라는 자신만의 논리가 확고히 서 있는 상태. 그치만 턴테이블 위에는 두터운 먼지가 쌓인지 오래며 음악은 그냥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 수준으로 이미 비닐판 컬랙팅의 첫 목적은 이미 저 멀리로.. 또한 수도 없이 해 온 배송 대행 신청도 지겨워져서 그냥 돈 좀 내더라도 아마존에서 직배송으로 속편하게 예약 걸어놓는 경우가 많아짐. 이러면 언제쯤 새 판이 도착할 지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어차피 안들을 거 크게 신경 쓰이진 않음.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삽질은 산 거 또 사기. 나름대로 discogs로 정리를 하고는 있지만 그걸로 중복 구매가 막아질 수준은 이미 지나감. 같은 음반 3장 쯤은 별 대수롭지도 않게 여김. 언젠간 정리되리라..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이제 아예 옷 가방은 포기하고 50장 들이 레코드판 전용 하드 케이스 하나 달랑 챙기는 등 주변인 들이 이해하기 힘든 짓거리를 자주 하게 되고 페이스북은 무반응에 지쳐 이미 알아서 탈퇴한 상태. 그래도 침대에 누워서 가득찬 판들을 둘러 보자면 가끔씩 씨익 웃게되는 경우가 있음. 맨정신에 바라보면 징그럽기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무서운 건 이러면서도 계속, 꾸준히 사고 있다는 점..
6. 그리고... [5001장~]
뭐 다시 벅스나 결제하고 아이팟이나 들고 다니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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